권투선수 황충재 프로필 나이
황충재는 1980년대 아시아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동양 웰터급 챔피언으로,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투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복서입니다.
링 위에서는 무패 행진과 화려한 KO 승으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은퇴 이후에도 해설자와 사업가, 가수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인생의 또 다른 무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MBN ‘특종세상’에 출연한 황충재는 영광의 전성기 뒤에 숨겨졌던 삶의 굴곡과 인생 3막을 준비하는 현재의 모습을 진솔하게 공개해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복싱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꿈과 가정에 대한 후회,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딸을 향한 그리움까지 담담히 털어놓으며, 챔피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자 아버지로서의 황충재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황충재
출생: 1958년 4월 (67세)
고향: 전라남도 광양
국적: 대한민국
신체: 약 178cm
가족: 딸
학력:
영산포상업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동국대학교 (편입)
황충재 딸 가족사
챔피언 복서 황충재가 MBN 프로그램 ‘특종세상’에 출연해 근황과 함께 인생의 깊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황충재는 1980년대 아시아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동양 웰터급 챔피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복서입니다. 이번 방송에서는 무패 행진의 영광을 뒤로하고 인생 3막을 준비하는 그의 현재 모습과,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이후의 고군분투가 진솔하게 담겼습니다.


프로 복서로서 정상에 올랐던 그는 은퇴 이후 사업 실패와 이혼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삶의 큰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외동딸과 약 7년째 연락이 끊긴 사연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황충재는 보고 싶은 딸 앞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스스로 “음치”라고 말할 정도로 낯설었던 노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복서 시절 다져온 근성과 인내로 매일같이 노래 연습에 매진하며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방송에서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복싱계의 또 다른 전설인 박종팔 선수와의 만남도 그려졌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황충재는 과거의 선택과 실패에 대한 자책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됩니다. 또한 오랜 망설임 끝에 딸의 집 앞을 찾아가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시도하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선공개 영상에서 황충재는 전성기 시절을 회상하며 “체육관에서 시합을 할 때마다 문화체육관부터 장충체육관까지 자리가 가득 찼다. 고통을 참고 끝까지 노력했던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보람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어 “운동선수 시절에 꿈을 다 이루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으로 남아 있다"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가족의 시선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황충재의 누나는 “어린 나이에 마음에 상처가 많았을 것”이라며, “이제는 서로를 다독여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딸도 이제는 다 알아차릴 나이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제작진에게는 “동생도 짠하고, 그 딸도 짠하다. 결국 아빠의 처신 하나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라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황충재는 딸 이야기가 나오자 끝내 감정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딸 얘기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딸을 보고 싶어도 못 본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르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후 용기를 내 딸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끝내 연락은 닿지 않았고, 그는 “사춘기 시절부터 딸을 세상에 홀로 엄마 품에 남겨두고 떠난 게 과연 아빠였나”라며 깊은 후회를 드러냈습니다.

방송을 통해 황충재는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다시 한번 꺼내 놓았습니다. 그는 “딸을 보고 싶지만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라며,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결혼해 아내와 딸을 둔 가장이었지만, 선수 시절 오로지 복싱에만 몰두했던 그는 가정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했던 점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 시절 내가 딸에게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아빠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었다"라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린 시절 홀로 엄마 품에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여전히 그의 삶에 큰 무게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황충재 복서 활동 경력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난 황충재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운동 신경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스포츠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특히 1980~9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복싱에 매료되며 권투 글러브를 끼게 되었고, 이는 그의 인생을 바꾸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TV 속에서 보던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승부욕에 강하게 끌리며 ‘짱’이 되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복싱을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황충재는 운동 DNA가 흐르는 전형적인 스포츠 명문가 출신입니다. 형제들 모두 각기 다른 종목에서 선수로 활약했을 만큼 가족 전체가 체육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큰형은 경희대학교에서 농구선수로 뛰었고, 둘째 형 황충일은 대경상고와 경희대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하며 실력과 체격을 모두 갖춘 유망주로 평가받았습니다. 바로 위 형인 황충환 씨 역시 고등학교 시절까지 권투선수로 활동하며 전국체육대회 전라남도 대표로 출전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는 MRC 대표로 재계에서도 활동 중입니다.


나주 영산포상고 재학 시절, 황충재는 호남복싱체육관에 입문하며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6년 전국신인대회에서는 유제두 선수의 동생 유제형에게 패하며 동메달에 머물렀지만, 이 경험은 오히려 그의 성장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77년, 고교 졸업반 시절 제5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동계 평가전을 통해 국가대표 선발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웰터급 간판선수 김주석의 경기 상대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황충재가 급히 대타로 투입되었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경기에서 다운까지 빼앗는 완승을 거두며 단숨에 국가대표로 발탁됩니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그는 1978년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 복싱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말레이시아 선수 마심과의 경기에서는 종이 울리자마자 13초 만에 KO 승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역사상 최단 시간 KO라는 기록을 세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황충재는 뛰어난 실력과 함께 남성적인 매력으로도 큰 인기를 얻으며 권투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79년 프로로 전향한 그는 동국대학교에 편입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1980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단디 구즈만을 꺾고 OPBF 동양 웰터급 챔피언에 오르며 동양 최강 복서로 군림했습니다. 이후 무려 13차 방어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며 슈가 레이 레너드와의 세계 타이틀전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그러나 세계 챔피언의 꿈을 앞둔 시점에서 인생을 바꾼 비운의 경기가 찾아옵니다. 세계 타이틀전 직전, 그는 컨디션과 훈련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양 타이틀 14차 방어전을 수락했고, 상대는 국내 챔피언 황준석이었습니다.
결국 8회 TKO 패를 당하며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했고, 이 한 경기로 슈가 레이 레너드와의 대결, 약 7억 원에 달하는 파이트머니, 그리고 세계 챔피언 도전권까지 모두 잃게 됩니다.


황충재는 이후 이 경기를 두고 “그 경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솔직하게 회상하며, 자신을 과대평가했고 상대를 쉽게 본 것이 실책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변명 없이 패배를 인정하는 태도는 그의 복서로서의 품격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984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KBS 복싱 해설자로 약 13년간 활동하며 링 밖에서도 복싱과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이후에는 평소 관심이 있던 패션 분야로 눈을 돌려 강남에서 ‘피렌체 양복점’을 10년 이상 운영하며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성복 모델로도 활동하며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황충재 트로트 가수 데뷔
이후 황충재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며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숨겨진 가창력을 선보였고, 선수 은퇴 이후 고민하던 인생의 방향 속에서 음악, 특히 노래에 대한 열정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2017년, 가수 남진과의 인연을 계기로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설운도가 작곡한 ‘뻥이야’로 무대에 오르며 ‘가수 황충재’로 인생 2막을 열었습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전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재 황충재는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 산하 환경가수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인생의 3막을 걷고 있습니다.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발맞춰 나무 심기 릴레이 운동을 주도하는 등, 환경 가수로서 노래와 메시지를 함께 전하며 사회적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 나이에 목표를 갖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라며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복싱으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살아가며, 황충재는 지금도 “무대 위에서 계속 달리고 있다"라고 말하는 인물입니다.
권투선수 황충재 프로필 나이































































































































































































